“로제타 홀, 한국 여성들 고통에 공감”

홀 가족은 한국교회사뿐 아니라 한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로제타 홀은 1890년 미국감리교회에서 파송한 여성 의료선교사로 한국 최초 여성병원인 보구여관(현 이대병원)의 초창기 구성원이었다. 의료선교사인 그의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은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평양선교를 시작했으며, 청일전쟁 때 한국인을 돕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들 부부의 사역은 아들 셔우드 홀로 이어졌다. 셔우드는 맹아학교, 결핵병원 등 선교 및 의료 부문에서 많은 업적을 세웠다. 로제타는 1900년 최초의 한국인 여의사 박에스더를 배출했다. 모자이크 미니스트리(대표 손경구 목사)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는 16일 저녁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 이대서울병원 방주교회에서 로제타 홀의 선교와 여성의료사역을 조명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손경구 목사는 평소 고려대의 로제타 관련 행사를 돕던 중 홀 가족에 관심을 두게 됐다. 손 목사는 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연구소에 ‘홀 가족 연구 사업’을 제안했다. 모자이크 미니스트리와 연구소는 올해 초부터 홀 가족의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며 이들의 사역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번 세미나는 학술연구 발표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다. 김신권 아주대 의대 교수는 ‘로제타 홀과 박 에스더: 여성의 의학전문 직업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로제타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 사회적 약자인 한국 여성들의 고통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며 “로제타와 그의 제자 박에스더는 의사로서 단순히 육체적 질병을 낫게 한 것뿐 아니라 환자와의 깊은 공감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전인적으로 회복하도록 도왔다”고 평가했다. 윤은석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박사는 ‘초기 내한 의료선교사와 전도: 로제타 홀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윤 박사는 “복음 전도 중심적 사고를 하는 로제타는 의술을 통해 영혼 구원을 바랐고, 그런 결과(세례 및 회심)가 나올 때 만족했다”고 말했다. 이어 “로제타는 남편 윌리엄이 1894년 11월 24일 사망하기 전까지 전도 소책자를 나눠주는 등 문서 전도를 했다”면서 “1897년 11월 10일 다시 내한한 후 순회전도 여행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집회를 열면서 전도하는 일에도 헌신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로제타 홀, 한국 여성들 고통에 공감”



홀 가족은 한국교회사뿐 아니라 한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로제타 홀은 1890년 미국감리교회에서 파송한 여성 의료선교사로 한국 최초 여성병원인 보구여관(현 이대병원)의 초창기 구성원이었다. 의료선교사인 그의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은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평양선교를 시작했으며, 청일전쟁 때 한국인을 돕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들 부부의 사역은 아들 셔우드 홀로 이어졌다. 셔우드는 맹아학교, 결핵병원 등 선교 및 의료 부문에서 많은 업적을 세웠다. 로제타는 1900년 최초의 한국인 여의사 박에스더를 배출했다.

모자이크 미니스트리(대표 손경구 목사)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는 16일 저녁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 이대서울병원 방주교회에서 로제타 홀의 선교와 여성의료사역을 조명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손경구 목사는 평소 고려대의 로제타 관련 행사를 돕던 중 홀 가족에 관심을 두게 됐다. 손 목사는 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연구소에 ‘홀 가족 연구 사업’을 제안했다. 모자이크 미니스트리와 연구소는 올해 초부터 홀 가족의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며 이들의 사역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번 세미나는 학술연구 발표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다.

김신권 아주대 의대 교수는 ‘로제타 홀과 박 에스더: 여성의 의학전문 직업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로제타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 사회적 약자인 한국 여성들의 고통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며 “로제타와 그의 제자 박에스더는 의사로서 단순히 육체적 질병을 낫게 한 것뿐 아니라 환자와의 깊은 공감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전인적으로 회복하도록 도왔다”고 평가했다.

윤은석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박사는 ‘초기 내한 의료선교사와 전도: 로제타 홀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윤 박사는 “복음 전도 중심적 사고를 하는 로제타는 의술을 통해 영혼 구원을 바랐고, 그런 결과(세례 및 회심)가 나올 때 만족했다”고 말했다.

이어 “로제타는 남편 윌리엄이 1894년 11월 24일 사망하기 전까지 전도 소책자를 나눠주는 등 문서 전도를 했다”면서 “1897년 11월 10일 다시 내한한 후 순회전도 여행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집회를 열면서 전도하는 일에도 헌신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